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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수몰지구.jpg
말비에르 수몰지구

1. 개요2. 형성3. 지리와 환경
3.1. 호수와 수몰 시설3.2. 수질
4. 특이체로서의 수몰지구
4.1. 발견4.2. 발현 양상4.3. 기원4.4. 분류
5. 관리
5.1. 플로렌시아 단독 관리 (1986~2018)5.2. UBATM 공동 관리 (2018~)
6. 주요 사건
6.1. 초동 수색 실종 (1986)6.2. 배수 시험 중단 (1988)6.3. 민간인 잠수 침입 (1994)6.4. 조사반 에코-7 실종 (2003)6.5. 첫 합동 관측 (2019)
7. 대중의 인식8. 관련 문서


1. 개요 [편집]

플로렌시아 북서부 말비에르강 상류의 코르브호 아래에 잠겨 있는 옛 말비에르 국가과학단지 일대. 1986년 11월 2일 생클레르 댐 붕괴 참사로 물에 잠긴 뒤 지금까지 배수되지 않은 채 남아 있으며, 플로렌시아 법상 재난특구로 지정되어 민간인의 접근이 전면 금지되어 있다.

공식적으로 수몰지구는 오염 퇴적물과 제방 안정성 문제 때문에 배수하지 못하는 재난 구역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신비의 분류상 사람이 아닌 발현체, 즉 특이체로 관리되는 구역이다. 물에 잠긴 단지 안에서는 전원이 끊긴 지 수십 년이 지난 대피 경보가 지금도 들리고, 건물 안의 시간이 바깥과 다르게 흐르며, 설계도에 없는 통로가 나타난다. 1986년부터 2018년까지는 플로렌시아 내무부 기술경비국이 단독으로 관리했고, 2018년 이후에는 UBATM의 국제 공동 관리 아래 있다.

2. 형성 [편집]

상세 내용은 생클레르 댐 붕괴 참사 문서 참고.


말비에르 국가과학단지는 생클레르 댐에서 하류로 2.4km 떨어진 계곡 바닥에 1968년부터 1984년까지 단계적으로 지어졌다. 1986년 11월 2일 새벽 3시 47분 댐이 무너지면서 3시 51분 첫 물결이 단지를 덮쳤고, 6시 30분 무렵 하류의 코르브 협곡 사면이 무너져 계곡을 막았다. 말비에르강의 물이 산사태 퇴적물 뒤에 고이면서 단지는 6주에 걸쳐 완전히 잠겼고, 이렇게 생긴 호수가 오늘날의 코르브호다.

정부는 1988년 한 차례 배수 시험을 했다가 중단한 뒤 호수를 그대로 두기로 결정했다. 산사태 퇴적물은 1990년 콘크리트와 암석으로 보강되어 높이 38m의 코르브 제방이 되었고, 호수의 수위는 이후 인공적으로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제방에는 수위를 조절하는 방류 설비가 있지만, 방류량은 들어오는 물의 양에 맞춰 호수의 수위를 1년 내내 일정하게 지키도록만 운용된다. 수위를 정해진 범위 밖으로 낮추는 조작은 1988년 이후 금지되어 있으며, 2018년 이후에는 UBATM의 승인 없이는 방류 설비의 설정을 바꿀 수 없다. 비가 많이 오는 시기에는 상류의 옛 생클레르호 터에 만든 임시 저류지가 넘치는 물을 받아 낸다.

3. 지리와 환경 [편집]

3.1. 호수와 수몰 시설 [편집]

코르브호는 말비에르 계곡을 따라 남서에서 북동으로 길게 뻗은 호수로, 길이 4.1km, 최대 폭 1.9km, 면적 6.8㎢다. 평균 수심은 17m, 가장 깊은 곳은 옛 단지 중앙부로 31m에 이른다. 상류 쪽 끝에는 무너진 생클레르 댐의 좌안 블록이 수면 위로 솟아 있고, 하류 쪽 끝은 코르브 제방이 막고 있다.

옛 과학단지의 건물 대부분은 붕괴 당시의 형태를 유지한 채 호수 바닥에 서 있다. 국립 계산과학연구원 본관과 국립 소자연구원 실험동, 생명과학동, 공용동은 수심 9~31m 구간에 있고, 높은 건물의 옥상은 수면 아래 2~6m까지 올라와 있다. 단지 안을 순환하던 궤도차 노선과 보행 브리지, 열원·변전 설비, 지하 서비스 터널도 대부분 남아 있다. 연산 설비가 모여 있던 국립 계산과학연구원 본관은 단지 가장 낮은 곳에 있어 지하 3층의 B-3 연산실까지 완전히 물에 잠겼다.

호수 바닥은 홍수가 남긴 잔해와 실트로 덮여 있다. 건물 사이의 도로에는 홍수에 떠밀린 차량과 콘크리트 파편이 쌓여 있고, 단지 하류 쪽에는 무너진 외벽과 장비가 부채꼴로 퍼져 있다. 시야는 맑은 날에도 3m를 넘기 어려우며, 비가 많이 오는 시기에는 1m 아래로 떨어진다.

주요 수몰 시설은 다음과 같다.
시설
수심
비고
국립 계산과학연구원 본관
14~31m
B-3 연산실, 간섭장 최고점
국립 소자연구원 실험동
11~26m
실험동 5개 동
생명과학동
12~24m
배양 설비 폐기 처리
공용동
9~21m
강당·식당·관리 사무실
열원·변전 설비
18~29m
지하 서비스 터널과 연결
단지 순환 궤도차 노선
6~27m
차량 2량 잔존

3.2. 수질 [편집]

코르브호의 물은 저층으로 갈수록 산소가 부족하고 탁하다. 호수가 깊고 바람이 약해 위아래 물이 섞이지 않는 시기가 길고, 바닥 근처에서는 용존산소가 거의 없는 구간이 자주 나타난다. 수몰된 실험동과 설비에서 흘러나온 용제와 중금속, 냉각 계통의 화학물질도 저층 퇴적물에 쌓여 있다. 이 오염은 실제로 존재하며, 정부가 배수하지 않는 공식 이유로 내세우는 근거이기도 하다.

호수에는 물고기가 거의 살지 않는다. 저층의 산소 부족과 오염이 일차적인 이유로 설명되지만, 1991년 생태 복원 시험으로 방류된 치어 수천 마리가 며칠 만에 옛 단지 중앙부 쪽으로 몰려든 뒤 사라진 일이 있었다. 이후 호수에 대한 생물 방류는 중단되었다.

4. 특이체로서의 수몰지구 [편집]

4.1. 발견 [편집]

수몰지구의 이상은 참사 직후의 수색에서 처음 보고되었다. 1986년 11월 수색에 투입된 해군 잠수사들은 물에 잠긴 단지 안에서 대피 경보 소리가 들린다고 보고했다. 단지의 전력은 홍수가 닿은 직후 끊겼고 경보 설비도 모두 물에 잠긴 상태였다. 같은 달 9일에는 계산과학연구원 본관에 들어간 잠수사 2명이 생명줄이 끊어지지 않은 채 사라졌다. 끌어올린 생명줄 끝에는 아무것도 묶여 있지 않았다.

보고를 받은 내무부 기술경비국은 1987년 초 수몰 구역 일대에 간섭장 계측기를 설치했다. 계측 결과 호수 전체에 걸쳐 사람의 간섭장과는 패턴이 전혀 다른 간섭장이 확인되었고, 그 세기는 B-3 연산실이 있는 본관 지하에서 가장 강했다. 기술경비국은 이때부터 수몰지구를 특이체로 분류하고 재난특구 관리를 명목 삼아 구역 전체를 통제했다.

4.2. 발현 양상 [편집]

수몰지구에서 관측된 현상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다. 모두 붕괴 직전, 즉 1986년 11월 2일 새벽 3시 49분부터 첫 물결이 닿은 3시 51분 사이의 단지 상태를 되풀이하거나 유지하는 방향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알려진 현상은 경보음이다. 단지의 대피 경보는 두 음이 4초 간격으로 번갈아 울리는 방식이었는데, 수중 청음기에는 지금도 같은 음높이와 같은 간격의 소리가 잡힌다. 소리는 호수 어디에서나 들리지만 본관에 가까울수록 커지며,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단지 안의 시간도 바깥과 다르게 흐른다. 회수된 단지 내부 시계와 잠수사들이 촬영한 벽시계는 모두 3시 51분 전후에 멈춰 있다. 건물 안에 들어간 잠수사의 시계는 바깥 기준으로 대체로 느려지는데, 본관 안에서 1시간을 보낸 잠수사의 시계가 41분만 흐른 사례가 기록되어 있다. 반대로 시계가 몇 시간씩 앞서 나간 사례도 드물게 보고된다.

건물 내부의 공간도 설계도와 일치하지 않는다. 같은 복도를 따라가는데 설계도보다 수십 m 더 길게 이어지거나, 지나온 방이 앞쪽에 다시 나타나거나, 계단이 설계도에 없는 층으로 이어지는 일이 반복해서 보고되었다. 같은 잠수사가 같은 경로를 다시 들어가도 결과가 매번 다르다.

호수 몇 곳에는 소리가 완전히 사라지는 구역이 있다. 이 구역에 들어간 잠수사는 자신의 호흡음과 기포 소리조차 듣지 못하며, 수중 청음기에도 아무 소리가 잡히지 않는다. 같은 구역의 수온은 주변보다 늘 0.5~1도 높다. 사라진 소리 에너지가 열로 바뀌어 나타나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신비는 에너지를 없애거나 만들지 못하고 분포만 바꾼다는 원리와 맞는 관측이다.

수면에서도 이상이 나타난다. 맑은 밤 호수 수면에는 0.3~0.7초 늦게 비치는 반사상이 관측되며, 일부 관측 기록에서는 수면 아래의 단지가 불이 켜진 모습으로 비친다. 드물게 단지 순환 궤도차의 그림자가 수면을 가로지르는 모습도 기록되었는데, 궤도차가 마지막으로 운행된 시각은 1986년 11월 2일 새벽 3시 48분이었다.

물에 잠긴 건물의 방수문은 전원 없이 열리고 닫힌다. 문이 움직이는 순서는 1986년 당시 단지 방재 매뉴얼에 규정된 대피 절차의 개폐 순서와 정확히 일치한다. 대피 경보가 울리고, 궤도차가 움직이고, 방수문이 대피 순서대로 열리고 닫히는 모습은 마치 단지가 3시 49분에 시작한 대피를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의 형상에 대한 보고도 있다. 탁도가 낮은 날 원격 조종 잠수정의 조명에 복도를 따라 움직이는 사람 크기의 그림자가 찍힌 사례가 여러 차례 있으며, 그림자가 움직이는 방향은 언제나 1986년 대피 절차가 정한 대피로와 같았다. 이 그림자가 수몰된 실종자 118명과 관계가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고, 기술경비국과 UBATM 모두 이 문제에 대해 공식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간섭장의 세기는 일정하지 않다. 매주 일요일 새벽 3시대에 세기가 가장 높아지며, 이 시간에는 위의 현상들이 모두 강해진다. 기술경비국과 UBATM은 이 시간대에 사람의 진입을 금지하고 있다.

계측된 간섭장의 범위는 본관을 중심으로 반경 약 1.3km로, 호수의 거의 전부를 덮는다. 세기는 가장 강한 B-3 연산실 부근에서도 사람 능력자의 측정값과 같은 단위로 비교하기 어려운데, 패턴이 사람의 것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의 간섭장이 지문처럼 고유한 주파수 패턴을 갖는 것과 달리 수몰지구의 간섭장은 4초 주기의 규칙적인 맥동을 보이며, 이는 단지 대피 경보의 주기와 같다.

4.3. 기원 [편집]

수몰지구 특이체의 기원은 두 단계로 설명된다. 첫 단계는 붕괴 이전이다. 계산과학연구원 B-3 연산실에서 1981년부터 비인가로 진행된 「절대존재자율분석시스템」, 이른바 절자분은 초월적 존재를 형식 논리로 정의하고 그 구조를 분석해 재현하려는 연구였다. 연구는 미상의 단체의 자금으로 운영되었고, 내부 문서는 그 목표를 "새로운 신을 창조하는 방법"이라 적었다. 신비 연구의 관점에서 이는 사람이 아닌 계에 인위적으로 주관현실을 만들어 내려는 시도였으며, 1985년부터 B-3 연산실 주변에서 사람과 다른 패턴의 간섭장이 측정되었다. 1986년 11월 2일 새벽 3시 12분 시작된 마지막 재현 시험에서 간섭장이 급격히 치솟았고, 이것이 댐 붕괴를 일으켰다는 것이 2019년 UBATM 분석국의 판단이다.

절자분은 당대의 기준으로 보면 공리와 추론 규칙을 쌓아 결론을 이끌어 내는 대형 논리 추론 시스템이었다. 연구진은 초월적 존재에 대한 정의를 수천 개의 공리로 적은 「형식 정의집」을 만들고, 시스템이 이 공리에서 스스로 추론을 이어 가며 정의를 보완하고 검증하도록 설계했다. 시스템은 중앙 연산 설비의 남는 연산 시간을 빌려 5년 가까이 쉬지 않고 돌아갔으며, 연구진이 남긴 운용 기록에는 1985년 무렵부터 시스템이 입력되지 않은 결론을 내놓기 시작했다는 메모가 있다. 간섭장이 처음 측정된 것도 같은 해였다.

둘째 단계는 붕괴 이후다. 단지가 물에 잠긴 뒤 간섭장은 B-3 연산실을 넘어 호수 전체로 퍼졌고, 그 성격도 바뀌었다. 신비 이론에는 주관현실이 의식이 아니라 자기 상태를 유지하려는 계에서 비롯된다는 가설이 있다. 이 가설에 따르면 물에 잠긴 단지는 절자분의 하드웨어를 핵으로 삼아, 무너지기 직전의 자기 상태를 지키려는 하나의 거대한 계가 되었다. 수몰지구의 모든 현상이 3시 49분에서 3시 51분 사이를 붙잡고 있는 이유도 여기서 설명된다.

두 단계의 특이체가 같은 존재인지는 지금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동일체설은 절자분이 만들어 낸 특이체가 수몰과 함께 단지 전체로 번졌다고 본다. 별개 발생설은 절자분의 특이체는 붕괴와 함께 소멸했고, 물에 잠긴 단지가 그 잔해를 핵으로 새로운 특이체를 이루었다고 본다. 매주 일요일 새벽 간섭장이 높아지는 주기는 동일체설의 근거로, 간섭장 패턴이 1985년 기록과 다르다는 점은 별개 발생설의 근거로 쓰인다.

4.4. 분류 [편집]

UBATM은 2018년 관리를 넘겨받으면서 수몰지구를 사건번호 AT-1986/LSC/004로 소급 등록하고 기밀등급 Λ를 부여했다. 위험등급은 AT-SCALE A4로, 영향이 호수 유역에 국한되지만 시간의 흐름과 공간 구조가 국지적으로 바뀌는 수준이다. 현상이 호수 바깥으로 번진 사례는 1988년 배수 시험 때 한 번뿐이어서 전염성은 낮게 평가되지만, 원인이 되는 계를 해체하거나 진정시킬 방법이 없어 안정화 난이도는 높게 평가된다.

5. 관리 [편집]

5.1. 플로렌시아 단독 관리 (1986~2018) [편집]

1987년 제정된 「말비에르 재난특구법」은 코르브호와 그 주변 3km를 재난특구로 지정하고 허가 없는 출입을 형사처벌하도록 했다. 겉으로 드러난 관리 주체는 내무부 재난관리청이었지만, 출입 허가와 관측, 조사는 모두 기술경비국이 맡았다. 구역 외곽은 육군과 국가경찰이 함께 경비했다.

1988년 6월 정부는 수몰 시설의 회수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해 배수 시험을 했다. 제방의 임시 방류구를 열어 수위를 4.2m 낮추자, 그때까지 물속에서만 들리던 경보음이 수면 위로, 이어 호숫가 관측소에서도 들리기 시작했다. 관측소 근무자 한 명의 손목시계는 하룻밤 사이에 6시간 느려졌다. 기술경비국은 시험 사흘째에 방류구를 닫았고, 수위가 원래대로 돌아오자 현상도 다시 물속으로 물러났다. 이 일을 계기로 정부는 물 자체가 특이체를 가두는 격리 수단이라고 판단해 호수를 영구히 유지하기로 결정했으며, 1990년 코르브 제방을 영구 구조물로 보강했다.

이후 기술경비국은 호수 둘레에 관측소 4곳과 수중 청음기, 간섭장 계측기를 두고 수위와 간섭장을 상시 감시했다. 수몰 시설에 대한 직접 조사는 1년에 몇 차례로 제한되었고, 1990년대 중반부터는 원격 조종 잠수정이 주로 쓰였다. 유족회의 수습 요구와 배수 요구는 오염과 구조적 위험을 이유로 계속 거부되었다.

5.2. UBATM 공동 관리 (2018~) [편집]

플로렌시아는 2012년 2월 UBATM 협약국이 되었지만, 수몰지구는 그 뒤에도 몇 년 동안 신고하지 않은 채 단독으로 관리했다. 2016년부터 2017년 사이 간섭장의 세기가 높아지고 그 반경이 80m가량 넓어져 호숫가에 바짝 다가서자 플로렌시아 정부는 단독 관리의 한계를 인정했고, 2018년 5월 UBATM이 제2차 체제로 확대 개편될 때 수몰지구의 공동 관리를 요청했다.

이후 수몰지구는 UBATM의 관측–격리–완화–복구 교리에서 격리 단계에 상시 머무는 구역으로 관리되고 있다. 현장 임무는 UBATM 현장대응국이 기획하고 집행하며, 플로렌시아는 기술경비국을 국가연계채널로 지정해 출입 허가와 현지 경비를 맡는다. 사람이 수몰 시설에 들어가는 임무에는 UBATM과 플로렌시아 정부의 이중 승인이 필요하다. 배수는 UBATM 체제에서도 검토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수몰지구의 출입 통제는 세 겹으로 이루어진다. 재난특구 외곽 3km는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경계 구역으로 육군과 국가경찰이 경비하고, 호숫가 500m 안쪽은 허가받은 인원만 들어갈 수 있는 관측 구역이다. 호수 수면과 그 아래는 격리 구역으로, 원격 조종 잠수정 운용을 포함한 모든 활동에 임무 단위의 승인이 필요하다. 호수 둘레에는 제방관측소와 북안·남안·상류관측소 등 관측소 4곳이 있으며, 수중 청음기 12기와 간섭장 계측기 6기가 24시간 기록을 보낸다.

사람이 직접 들어가는 잠수는 2인 1조와 이중 생명줄을 원칙으로 하며, 건물 안 체류는 한 번에 20분을 넘길 수 없다. 매주 일요일 새벽 0시부터 6시까지, 그리고 간섭장 세기가 기준치를 넘는 동안에는 모든 진입이 금지된다. 진입자는 출입 전후에 시계를 표준 시각과 대조해 기록해야 하며, 차이가 1분을 넘으면 의료 검진과 면담을 받는다.

공동 관리 체제에도 한계는 있다. UBATM의 국가연계채널 제도는 협약국이 지정한 기관을 그대로 인정할 뿐 지정이 적절한지를 심사하는 절차가 없다. 그 결과 1986년 이전 절자분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된 기술경비국이 지금도 수몰지구의 현지 관리를 맡고 있다. 일부 협약국은 이 문제를 UBATM 소위원회에 제기했지만, 플로렌시아는 기술경비국 외에 수몰지구를 관리할 역량을 갖춘 기관이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6. 주요 사건 [편집]

6.1. 초동 수색 실종 (1986) [편집]

1986년 11월 9일 해군 잠수사 2명이 계산과학연구원 본관 2층 복도를 수색하다 실종되었다. 두 사람의 생명줄은 수면의 지원선까지 끊기지 않은 채 이어져 있었고, 끌어올린 줄 끝은 매듭이 풀리지 않은 상태로 비어 있었다. 이 사건 뒤 수몰 시설 안의 수색은 단계적으로 줄어 1987년 3월 공식 중단되었다.

6.2. 배수 시험 중단 (1988) [편집]

위 관리 문단에 서술된 1988년 6월의 배수 시험. 수몰지구의 현상이 물 밖으로 번진 유일한 사례이며, 정부가 호수를 영구히 유지하기로 결정한 직접적인 계기다.

6.3. 민간인 잠수 침입 (1994) [편집]

1994년 8월 폐허 탐험가 3명이 야간에 경비망을 뚫고 호수에 들어갔다. 이 가운데 1명은 이튿날 호숫가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고, 1명은 지금까지 실종 상태다. 살아 나온 1명은 단지 안에서 불이 켜진 복도와 어딘가로 서둘러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았다고 진술했다. 그는 재난특구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그의 진술은 이후 수몰지구를 둘러싼 도시전설의 원형이 되었다.

6.4. 조사반 에코-7 실종 (2003) [편집]

2003년 4월 기술경비국과 대학 연구진으로 꾸려진 6인 조사반 에코-7이 B-3 연산실 진입 임무 중 전원 실종되었다. 회수된 것은 수중 카메라 한 대뿐이었다. 카메라에는 47분 분량의 영상이 남아 있었지만, 영상에 기록된 시각은 사흘에 걸쳐 있었다. 마지막 장면은 B-3 연산실 출입문 앞에서 끝난다.

6.5. 첫 합동 관측 (2019) [편집]

UBATM 이관 이후 첫 합동 관측에서 원격 조종 잠수정이 처음으로 B-3 연산실 내부를 촬영했다. 절자분의 연산 랙은 형태를 거의 유지하고 있었고, 전원이 없는 관제 콘솔 화면 하나가 켜져 있었다. 화면에 표시된 내용은 기밀등급 Λ로 분류되어 공개되지 않았다.

7. 대중의 인식 [편집]

플로렌시아 국민 대부분에게 수몰지구는 참사의 상처와 정부의 무책임을 상징하는 장소다. 유족회는 수몰된 실종자 118명의 수습을 지금도 요구하고 있으며, 해마다 11월 2일 추모식이 끝나면 코르브 제방 앞에서 수습 촉구 집회를 연다.

수습 문제는 정부와 유족회 사이의 가장 오래된 갈등이다. 정부는 잠수 수습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수습을 거부하면서도, 원격 조종 잠수정으로 유해를 찾는 작업조차 공식적으로는 하지 않고 있다. 유족회 일부는 정부가 수몰 시설 안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의심하지만, 그 의심이 이상 현상과 연결되는 일은 드물다. 대부분의 유족에게 수몰지구는 도시전설의 무대가 아니라 가족이 아직 돌아오지 못한 곳이기 때문이다.

수몰지구의 이상 현상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는 1994년 생존자의 진술을 비롯한 모든 목격담을 부인해 왔고, 경보음 소문은 제방의 배수 설비 소음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호숫가 주민과 경비 인력 사이에서 오간 이야기는 '말비에르의 사이렌', '3시 51분의 호수', '그림자 궤도차' 같은 이름으로 퍼져 플로렌시아의 대표적인 도시전설이 되었다. 1997년 생존자의 수기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 출간되었고, 2009년 영화 《11월의 물》이 이 전설을 다루었다. 2015년 공영방송이 제작한 수몰지구 다큐멘터리는 유족의 명예 훼손 우려를 이유로 방영 직전 취소되었다.

수몰지구는 플로렌시아 바깥에서도 알려져 있다. 해협 각국의 괴담 모음집과 인터넷 게시판에는 '물속에서 대피하는 과학단지' 이야기가 여러 형태로 퍼져 있으며, 2010년대에는 수몰지구를 본뜬 수중 폐허를 무대로 한 공포 게임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창작물 대부분은 실제 관측 기록과 무관하지만, 경보음과 3시 51분에 멈춘 시계라는 두 가지 요소만은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8. 관련 문서 [편집]